육아/교육 | [세계사]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 에게해를 둘러싼 역사 한눈에 보기

등록일 2019-09-0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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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리스 바다로 비춰본 '격동의 B.C. 서양사'

격동의 서양사, 에게해에서 서막을 올리다!
TV나 여행 광고에서 막강한 ‘청량미’를 내뿜는 이 여행지를 본 적 있을 거예요. 바로 바다와 근접한 그리스의 모습인데요. 이 바다는 지중해 중에서도 가장 많은 그리스 신화와 역사를 담고 있다는 ‘에게해’라는 바다입니다. 그런데 이 바다를 자세히 살펴보면 기원전의 서양사가 한눈에 보인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청동기 시대에 그리스와 에게해에서 일어난 문명을 ‘에게문명’이라고 불러요. 이 지역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 수많은 도시국가가 출현했어요. 그러면서 격동의 서양사가 시작되었지요. 에게해는 수많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또한 터키 남서부 지역과도 인접해 있어 오래전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한 곳이지요. 특히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해상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기도 했어요. 에게해가 들려주는 격동의 서양사 이야기, 한 번 들어볼까요?

-이 기사는 <톡톡> 8월호 32p에 6p분량으로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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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서 탄생한 민주주의가 자라난 바다, 에게해
세계의 역사학자들은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가 발생한 곳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라고 보고 있어요. 무려 기원전 5세기 무렵입니다. 아테네에서 발생한 민주주의는 에게해를 둘러싸고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로 퍼져나가 이 바다를 ‘민주주의의 고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로 입법과 행정에 대한 결정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의 투표로 결정됐어요. 하지만 이처럼 투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성인 남성으로만 제한됐습니다. 따라서 미성년자나 여성, 노예, 외국인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이 없었어요. 그래서 총 30만 명 정도 되는 아테네의 주민 가운데 투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3~5만 명 정도였답니다.

그리스 VS 페르시아, 서양사를 가로지르는 악연이 시작되다!
드넓은 영토를 차지하며 명성을 떨치던 페르시아 제국에게 에게해를 중심으로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그리스는 매우 탐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페르시아는 기원전 492년, 그리스를 침략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바로 1차 페르시아 전쟁이지요.

이 전투에서 아테네 군사 들은 마라톤 평원에서 사력을 다해 싸웠어요. 이 전투는 결국 그리스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스의 병사 중 하나는 이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0여 km를 달려가 그리스가 승리했음을 알리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현재 우리가 아는 마라톤의 거리, 42.195km가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30만 대군으로 다시 쳐들어온 페르시아, 결과는?
이후 기원전 480년, 이를 갈던 페르시아는 3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그리스를 침공했어요. 2차 페르시아 전쟁이 벌어진 것이죠. 이때 페르시아에 맞서 그리스를 수호하기 위해 도시국가들이 나섰는데요. 육군은 스파르타, 해군은 아테네가 지휘했어요. 특히 스파르타의 정예병 300명이 테르모필레 계곡에서 페르시아군을 막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사건은 역사에 길이 남는 전투가 돼 오늘날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2차 페르시아 전쟁은 아테네의 유인작전이 성공하면서 결국 또 페르시아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아테네는 ‘살라미스만’이라는 해협으로 페르시아군을 유인했는데요. 이곳은 해협이 매우 좁아 페르시아의 대규모 함대가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했고, 이것이 바로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패했지만 ‘근성’만은 세계 최고였던 페르시아
하지만 끈질긴 페르시아의 침략은 끝나지 않았어요! 그다음 해인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가 또다시 쳐들어온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근성이죠? 아테네의 북동쪽 플라타이아이 평원에서 벌어진 3차 페르시아 전쟁에도 페르시아는 결국 그리스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려 3번이나 치러진 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가 모두 승리를 거두며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상당했어요. 특히 그리스를 이루고 있던 도시국가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갈등을 겪으며 서로 갈라지게 됐죠. 이 두 도시국가의 갈등은 결국 내전으로까지 이어졌는데, 이를 ‘펠로폰네소스 내전’이라고 합니다.

내전 틈타 새로운 역사를 쓸 ‘마케도니아’ 탄생
한편 그리스가 펠로폰네소스 내전으로 어수선할 때 그리스 북부지역에서 심상찮은 움직임이 발견됐습니다. 바로 새로운 국가, ‘마케도니아’가 탄생을 알린 것이죠. 마케도니아의 뛰어난 왕, 필리포스는 그리스 전역을 1년 만에 통일하며 강국으로 성장했어요.

필리포스 왕은 이 기세를 몰아 페르시아로 진격하려고 했지만 결국 암살당하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필리포스 왕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아들이 곧 왕위를 이었는데요. 이 아들이 바로 ‘세계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알렉산드로스 3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 전설을 시작하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은 150년 전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를 국가의 ‘원수’로 삼았어요. 그리고 오래전의 복수를 하기 위해 동방원정을 떠났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수스 강가에서 다리우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르고 소아시아, 페네키아, 시리아, 이집트를 차례차례 정복했지요. 그리고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웠어요. 이중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오늘날 ‘지중해의 진주’로 불릴 만큼 유명한 장소가 되었죠.

아시아를 제패한 알렉산더가 피워낸 ‘헬레니즘’ 꽃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군대는 티그리스강 유역에서 페르시아와 다시 한 번 큰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요. 여기서 페르시아는 크게 패하고,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가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이 기세를 몰고 계속 동쪽으로 진출하며 오늘날 ‘이란’ 지역을 모두 통일학도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건넜어요. 그러나 인도 중부의 펀자브 지방을 넘으면서 질병과 향수병에 시달리던 부하들의 반발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게 됐어요. 이후 알렉산더는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무려 12년 만에 막을 내린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동서로는 인더스강에서 아드리아해까지, 남북으로는 이집트에서 다뉴브강까지 3개 대륙에 걸친 엄청난 대제국을 건설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로써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새로운 문화도 탄생하게 됐는데요. 이것이 바로 ‘헬레니즘 문화’에요. 헬레니즘 문화는 인도에도 전파돼 ‘간다라 미술 양식’을 만들고, 이 양식은 동아시아까지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눈에 본 세계사!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몇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기원전, 지금보다도 훨씬 더 격동적인 역사가 이 세계에 존재했던 것이죠. 역사는 지금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몇천 년 후에는 여러분의 후손의, 후손의, 후손의, 후손들이 여러분의 역사를 살펴보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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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에게해 [출처=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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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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